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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Box: Confucius Humanitarianism

유교의 새싹

공자의 세계 평화론

전쟁을 폐지하고 군사 사회를 산업 사회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공자와 그의 제자 안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천하를 구제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찾아 다니던 공자는 어느날 자로, 자공, 그리고 안회들과 함께 농산애 올라서 넓은 천지를 바라보며 그들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자로가 벌떡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들고, "저는 잘 훈련된 대군을 거느리고 적군과 대결하여 그들을 무찔러서 천리 밖으로 몰아내어 일시에 평화의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하고 폭호빙하의 용기를 보였다. 공자는 감탄하여 고개를 끄떡였다. 다음에 자공이 천천이 일어서더니, "저는 두 나라 군사가 진을 치고 맞서서 최후의 일전을 버리려는 순간에 그들 사이에 용감스레 뛰어들어 전쟁의 이득과 손실을 누누이 설명하여서 두 군사가 스스로 물러가게 설득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이룩하겠습니다" 하고 일장 웅변을 토하였다. 공자는 또 감탄의 표정을 보였다. 깊은 사색에 잠겨 있던 안회는 공자의 권고에 마지 못한 듯 일어서서 조용조용히 다음 같이 말하였다. "저는 어진 임금을 만나 그의 재상이 되어 모든 성벽을 무너뜨리고는 다시 수리할 필요가 없게 하고, 성 둘레를 에워싼 시궁창을 다시 넘어드는 도적이 없도록 하고 칼과 창을 모두 녹여서 농구를 만들게 하여 영원히 전화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는 자로의 용맹스런 군사도, 자공의 힘찬 웅변도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공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아 참 아름다운 사상이로군! 하였다. 자로는 참다 못하여 급히 일어서," 그러면 스승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공자는, "그래, 나는 안회의 평화안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를 따라 나서겠어" 하였다. 옛 생각이기는 하지마는 온 인류가 갈망하는 영원한 평화론이다.


공자의 이상 사회: 대동 사회

공자의 이상 사회는 어떠한 것인가? 오늘날까지 알려진 많은 이상 사회론 가운데서 이렇게 짧은 글 속에 이 같이 깊은 뜻을 가진 것은 없을 것이다.

 

그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큰 도가 실천되면 온 천하가 공통되고, 어질고 유능한 이가 선출되어 서로 믿고 화목한 사회를 이룩한다. 자기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녀들만을 자식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늙은이는 뜻 있는 생애를 누리고, 젊은이로 하여금 쓰일 곳이 있게 하며, 어린이로 하여금 의지하여 성장할 수 있게 하고, 홀아비와 홀어미, 불구자와 병든 이는 돌보아주는 곳이 있어 부양을 받을 수 있게 하며, 남자는 각자에 알맞은 직분이 있고, 여자도 자기에게 귀속할 몫이가 있도록 한다. 재화가 헛되게 버려지는 것을 미워하지마는 개인이 사사로이 감추어 두지 않으며, 사람의 힘이란 것은 각자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지마는 그 노력을 반드시 자기 자신의 사리를 위해서만 쓰지는 앓는다. 그런 까닭에 간사한 무리들은 길이 막혀 일어나지 못하며, 절도나 난적도 일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안전하면 바깥문을 닫을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세상을 대동의 사회라고 한다."

 

공자의 이상 사회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세계로 진화한다. 그때는 각 나라의 수레 바퀴는 표준화 되어서 전 세계 어느 곳이라도 달릴 수 있게 된다. 세계에 공통 된 말과 문자가 있어 어느 곳에서도 통용 될 수 있다. 그리고 습관과 풍속이 비슷하여 감정과 의사가 서로 잘 상통한다.

 

미국이야 말로 이런 이상 사회의 씨를 심어 실험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신천지이다. 첫째로는 그 광대하고 풍요한 대지를 가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문화가 다른 수많은 민족이 단체를 이뤄 큰 갈등 없이 공존하여 살아가는 사회를 이룩하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로는 각자의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는 복합 사회를 이루어서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는 16 세기 이후 수많은 이상 사회 사상을 도입하여 실험하여 왔기에 공자의 "대동사회" 도 이 땅에 뿌리를 내려 이 사회에 동양인의 공헌을 할 때가 왔다고 믿는다.


유교는 종교인가?

유교는 소위 현재 유행되고 있는 그런 유의 종교는 아니다. 인종, 국적, 종교, 사상과 주의를 초월하여 고금을 통하고 동서에 어긋나지 않는 종교 중 종교라는 것이 옳을는지 모르겠다. 종교는 상식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두 가지의 특징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참다운 교리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그 교리를 실천하는 의례가 있어야 한다. 유교는 이 두 가지를 갖추어 있다. "중용" 에 "하늘이 부여한 바를 천성이라 하고, 그 천성을 잘 따라가는 길을 도라 하고, 그 도를 잘 닦는 것을 종교라고 한다. 그 도는 잠시 동안이라도 떠나갈 수 없다. 만약에 그 도를 떠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니라" 고 하였다. 그래서 맹자는 "우주 만물을 창조한 우리 인류의 첫선조인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천성을 마련하여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최초에 모든 것이 우리 자신 안에 갖추어져 있어서 자족하였다. 그 마음을 잘 알면 그 천성을 알 수 있고, 그 천성을 다 알게 되면 하느님을 알 수 있다. 그 마음을 알아 잘 보존하고 그 천성을 잘 기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내 밖에 나와 대립하고 있는 하느님보다, 내 안에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을 존경하고, 항상 자중하여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수양이 바로 도를 닦는 종교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같이 있다가, 이 세상을 떠나도 葁하느님과 함께 하늘 나라로 돌아가기 때문에 유교에는 소위 지옥이 없다. 공자는 평생 인간에서 모든 공포를 제거하는 것이 바로 행복을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죄니 지옥을 가지고 인간을 위협한 일이 없었다. 동양인에게 지옥을 도입한 것은 불교와 기독교이다.

 

순자는 인간의 길흉과 행복은 인간이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 것이지 하느님이 이것을 주었다 빼앗았다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이 같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였다. 그가 더 강조한 것은 사람이 자중하여 만사 성의껏 하면 자연 천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천운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따로 없다 하였다.

 

문도의 열쇠: 도를 경험하는 길

내 자신을 반성하여 지성스러우면 그 즐거움은 이 보다 더 한 것이 없다. 그래서 공자는 "누구나 아침에 도를 경험하면 저녁에 죽어도 후회되지 않느니라" 하였다. 그 도란 무엇이며, 어떠한 것일까? 도는 바로 천성이며 또 그 천성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할려면 걸어가는 길과 같다. 옆길을 가면 도에는 닿을 수 없다. 천성은 무엇이냐? 기와 리로써 되어 있고, 그것은 "인" 이라는 사랑의 원천이며 생명을 이룩하는 근원이며, 또 의란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 하는 리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도는 음과 양의 기, 음양의 변화의 이치를 가지고 만물의 움직임을 좌우한다. 정 이천이 말하기를 "천지 사이에 혹 음이 되고, 혹 양이 되어, 오고 가고, 변화하여, 만고에 그침이 없는지라. 이것을 일러" 도 "라고 한다. 그래서 일음 일양이 '도'니라" 고 하였다.

 

도를 경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를 "중" 이라 하고 그들 지각과 감정이 이미 발하여 리에 따라 조절된 상태를 "화" 라고 한다. "화" 는 모든 사물 현상을 지식으로 판단하는 형이상의 세계이며, 선과 악을 안다. 그 반면 중은 기로 된 형이하의 세계이며 무의식 속에 있기에 중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고, 좋고 나쁜 것이 없고 그것들을 초월한 상태, 그런 구별이 없는 의식 이전의 세계다. 양지 양능의 형이하 영역에는 선악, 호불호를 구별하는 지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지혜의, 무의식의 세계다. 하느님이 준 천성의 세계다. 지식을 얻자 천성에서 벗어나 선악을 구별하는 인성의 세계에 든다.

 

문도에는 두기지 길이 있어, 절차탁마하여, 짜르고 깎고, 갈고 다듬어 노력으로 "화" 를 얻는 법과, 지성으로 돌연 도통하여 "중" 에 이르는 법이 있다. 문도의 결과는 어떠한가? 지성감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된 사람은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환하게 보이고,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 변화하게 되고,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는 경지에 도통한다.

 

(주역)에 말하기를 "역에 성인의 도가 있다 ... 그 역은 생각함이 없다. 하는 것도 없다. 적막해서 움직이지 않다가 감동하여 드디어는 천하의 일에 통한다. 천하의 지극히 신비스러움이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가할 것인가? "역" 은 성인의 심원한 것을 지극히 하고 기밀한 것을 연마하는 것이다. 오직 깊기 때문에 능히 천하의 뜻에 통할 수 있다. 오직 기밀하기 때문에 능히 천하의 일을 이룬다. 오직 신비롭기 때문에 빨리 가지 않아도 빠르고, 가지 앓고서도 이를 수 있다" 고 하였다.

 

첫째로 개인적으로 도를 경험하는 방법이 있다. 중에 이르면 배우지 않고도 알고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하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용의 길이다. 화에 이르는데는 사물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이치에 따라 수양하는 대학의 길이 바로 이것이다. 둘째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도를 경험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통하여 도를 구하는 것이다. 곧 두 사람 이상이 한 자리에 모여서 예를 실행하는 것이다. 둘째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 예를 통하면 지상에서는 온 인류가 한 마음으로 한 인류 공동 사회 Community를 이루고 서로의 마음이 상통하여, 위에는 우리의 첫선조인 하느님과 상통하여 "천인합일" 을 이룩할 수 있다. 이런 길을 밟아서 온 세계가 한 집이 되어 서로 화합하여 서로 도와 대동사회라는 Utopia를 이 지상에 건설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문도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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